본문 바로가기

뭐든지 리뷰

붉게 물든 밤, 용산의 몬스터

때는 12월 초 어느날, 겨울 추위가 서서히 내려앉은 용산의 밤거리는 고요했다. 뿌연 가로등 불빛 아래, 어둑한 골목에 자리 잡은 낡은 주점 ‘적막酒(주)’에서는 뜻밖의 취객이 한 명 앉아있었다.
그는 용산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존재, 이 세상의 균형을 흔드는 수많은 장난을 벌였다고 전해지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모습을 확인한 적은 없었다. 모두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여겼으니까.

적막주점


망각쥬스의 등장
주점의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안은 따사로운 노란 조명으로 물들어 있었다. 몇몇 취객이 아무런 대화 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뿐, 특별한 일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쪽 구석 테이블에는 검은 코트를 걸친 인물이 느슨하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잘생겼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길함을 풍기는 그의 시선은 카운터 뒤에 놓인 붉은 빛이 도는 유리병에 머물러 있었다.
병 안에는 묘하게 팔색조 빛을 띠는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그 술은 가게 주인이 직접 ‘망각쥬스’라 불렀는데,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을 전부 빼앗아간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정체를 확실히 알지 못했다.

망각쥬스


“사장님, 그거 한 잔 주시죠.”
낯선 목소리가 가게 주인의 귀에 들리자, 그는 흠칫 놀라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건… 일반적으로 손님께 드리는 술이 아닙니다만.”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 곧 사탄은 강렬한 빛을 내뿜는 붉은 눈으로 가게 주인을 응시하며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난 지금 그 술이 절실하게 필요하거든.”

사탄의 주취


시작된 붉은 혼돈
결국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망각쥬스를 잔에 따랐다. 물결치는 붉은 액체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반짝이는 작은 기포들이 서서히 솟아오르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요동쳤다.
사탄은 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 시선은 창밖 어둠 속으로 뻗었다.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컥!”
그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붉은 기운이 주변을 뒤덮었다. 도로에 서 있던 자동차들이 동시에 경적을 울리고, 가로등 불빛은 일제히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하늘마저 피 비가 내리듯 온통 빨간 물감이 뿌려진 듯 보였다. 용산에서 시작된 이 기괴한 현상은 순식간에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혼돈의 시작


모든 것을 잊어버린 세계
망각쥬스를 마신 괴물은 잊고 싶던 기억을 몽땅 떨쳐냈다. 원래라면 ‘몬스터’라는 존재조차 모든 비극의 근원으로 여겨지겠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정체와 과거의 저주받은 능력을 거의 다 잃어버렸다.
기억을 잃은 대신, 혼돈을 일으키는 절대적인 힘만이 세상에 흩어져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을 부추겼다. 도시 곳곳에서 폭력과 기괴한 환영이 난무했으며,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적대시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혼돈


기억을 되찾아야만 하는 사명
붉은 안개가 온 지구를 휘감고, 패닉 상태에 빠진 인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에 허덕였다.
하지만 희망은 남아 있었다. 용산의 깊은 지하 어딘가에, 이 망각쥬스를 해독할 수 있는 고대의 묘약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과거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던 누군가는, 세상에 퍼진 붉은 혼돈을 되돌리기 위해 괴물의 잊힌 기억을 되살리고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이 붉게 물든 바로 그날, 2024년 12월 3일.
모두가 혼돈에 빠진 시대를 뒤엎기 위해서는, 망각쥬스에 의해 지워진 괴물의 기억을 반드시 되찾아 멸절시켜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다시금 균형을 회복하고, 새벽의 빛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몬스터의 최후